2023년 애플 TV+에서 공개된 영화 ‘테트리스(Tetris)’는 단순히 유명 퍼즐 게임의 탄생기를 다룬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말 냉전의 절정기였던 소련을 배경으로, 한 게임 사업가가 어떻게 체제의 장벽을 넘어 혁신적인 게임 ‘테트리스’를 전 세계로 퍼뜨릴 수 있었는지를 실화 기반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과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감정선까지 고루 갖춘 이 작품은 단순한 게임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닌, 체제와 자본, 자유와 억압의 대립 속에서 피어난 우정과 도전의 서사입니다.
1. 줄거리 요약 – 단순한 게임이 세계를 움직이다
1984년 소련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단순하지만 중독성 강한 퍼즐 게임 ‘테트리스’를 개발합니다. 폐쇄적인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그의 창작물은 개인의 것이 아닌 국가 소유로 간주되며, 게임은 소련 내부에서만 조용히 퍼져나갑니다. 하지만 그 매력은 국경을 넘어섭니다. 영국의 사업가 로버트 스타인이 소련 국영기관 ELORG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였고,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과 아들 케빈이 그 권리를 확장하려 합니다. 이때 일본에서 활동하던 게임 사업가 헹크 로저스가 1988년 CES 박람회에서 테트리스를 접하고, 그 가능성을 알아봅니다. 그는 닌텐도와 손잡고 테트리스를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에 탑재하고자 직접 모스크바로 향합니다. 당시 외국인에 대한 감시가 심했던 소련에서 헹크는 통역사 사샤와 함께 ELORG와 협상하며 저작권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한편, 케빈 맥스웰과 그의 아버지도 같은 목표로 모스크바에 도착해 소련 고위 관료 발렌틴과 뒷거래를 시도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벌이는 저작권 확보 경쟁을 추격전과 스파이 액션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게 풀어갑니다.
2. 등장인물 및 배우 소개 – 실존 인물과 그들의 재현
이야기의 중심에는 헹크 로저스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펼치던 네덜란드계 미국인 헹크는 실제 테트리스의 글로벌 유통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 영화에서는 태런 에저튼(Taron Egerton)이 그를 연기합니다. 헹크는 가족을 위한 가장이자,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며, 태런 에저튼은 그의 진지함과 유머를 모두 살려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알렉세이 파지트노프 역은 니키타 예프레모프(Nikita Yefremov)가 맡아, 창작자로서의 자부심과 공산체제 속에서의 고뇌를 섬세하게 연기합니다. 통역사이자 헹크의 소련 내 가이드였던 사샤(소피아 레베데바), 비리를 일삼는 소련 고위 관료 발렌틴(이고르 그라부조프), 권력을 탐하는 재벌 2세 케빈 맥스웰(앤서니 보일) 등 주변 인물들도 저마다의 욕망과 이념, 역할을 통해 이야기의 갈등을 촘촘히 엮어냅니다. 이처럼 실제 인물들의 삶과 관계를 반영한 캐스팅과 연출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실화 기반 영화로서의 설득력을 더합니다.
3. 냉전 시대의 소련 – 게임보다 복잡했던 정치적 배경
‘테트리스’의 진짜 매력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게임이 탄생하고 퍼져나가는 ‘시대적 배경’에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소련은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모든 자산과 창작물은 국가 소유로 간주되던 시대였습니다. 개인의 창작물은 자유롭게 상업화될 수 없었고, 외국인과의 접촉은 KGB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헹크 로저스는 닌텐도와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위 관료들을 직접 만나고, 뇌물과 협박, 사기와 협상이 난무하는 저작권 전쟁 한가운데에 뛰어듭니다. 이 과정에서 소련 관료들의 부정부패, 체제의 경직성, 그리고 민간 창작자들이 겪는 억압적 현실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소련의 붕괴를 암시하는 시대적 정황도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영화의 역사성과 사실감을 높입니다. ‘테트리스’는 단순한 게임이 어떻게 체제 간 이념의 전쟁터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서사의 일면도 함께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4. 결말 – 체제의 장벽을 넘은 우정과 성공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헹크와 알렉세이가 서로를 돕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적 신뢰와 우정으로 체제를 넘어서게 되는 순간입니다. KGB와 부패한 고위 관료들이 저작권을 차지하기 위해 협박하고 거래를 시도하지만, 알렉세이의 결단과 벨리코프의 도움, 사샤의 용기 덕분에 닌텐도가 테트리스의 정식 휴대용 저작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후 발렌틴 일당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체포되고, 알렉세이는 직장을 잃고 쫓겨나지만 헹크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두 사람은 결국 함께 ‘테트리스 컴퍼니(Tetris Company)’를 설립하게 되고, 테트리스는 닌텐도 게임보이에 탑재되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 결말은 실화에 기반해 각색된 장면으로, 테트리스가 어떻게 ‘게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게임’이 되었는지를 극적으로 정리해 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핵심에는 체제의 차이보다 중요한, 인간 간의 신뢰와 의지가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5. 영화적 구성과 연출 – 스릴러와 드라마의 절묘한 균형
감독 존 S. 베어드(Jon S. Baird)는 단조로울 수 있는 실화 스토리를 추격전, 협상, 반전 등의 요소를 더해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재구성했습니다. 모스크바 시내를 누비는 자동차 추격씬, 뒷거래 현장, 감시와 도청 등 첩보 영화의 전형적인 연출 기법이 영화 전반에 녹아있으며, 전반적인 톤은 ‘스파이 게임’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테트리스 게임의 픽셀 그래픽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어 시각적으로도 유쾌한 재미를 더합니다. 음악과 편집은 80년대 복고 분위기를 잘 살려주며, 테트리스의 블록이 쌓이듯 서서히 완성되는 줄거리와 감정의 흐름이 매우 유기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마치 게임처럼 하나씩 장벽을 깨고 나아가는 구조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주인공 헹크와 함께 숨을 고르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테트리스’는 게임 팬뿐만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실화 영화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6. 종합 평점과 평가 –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선 시대의 초상
영화 ‘테트리스’는 IMDb에서 7.4점, Rotten Tomatoes에서는 평론가 지수 69%, 관객 팝콘 지수 88%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게임을 주제로 한 영화 중 드물게 사실성과 극적 재미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태런 에저튼의 진정성 있는 연기와 영화의 리듬감 있는 전개는 작품을 더욱 몰입감 있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테트리스라는 게임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서, 냉전 시대 체제 간 충돌, 창의성의 억압과 자본의 논리,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우정이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왜 우리는 단순한 게임에 열광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게임을 만든 이들의 열정과 싸움은 얼마나 치열했는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문화, 인간을 아우르는 드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테트리스는 블록을 맞추는 게임이지만, 영화 ‘테트리스’는 시대의 블록을 맞춰가는 한 인간의 기록이며, 실패와 도전, 그리고 믿음의 아름다운 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