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바쁘고 각박한 현대인의 삶에 쉼표를 찍어주는 잔잔한 감성 영화입니다.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 도쿄를 무대로 연출한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줄거리 전개, 인물 해석, 연출 방식,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까지 심도 깊게 다뤄보겠습니다.
아날로그의 향수와 일상의 정취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 공공화장실의 청소일을 맡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코스로 이동하며,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얼핏 보면 반복되는 단조로운 삶처럼 보이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갑니다. 자판기 커피 한 캔,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올드팝, 흑백 카메라로 찍는 나뭇잎 사이 햇살. 이 모든 소소한 일상이 그에게는 충만한 ‘행복의 단서’입니다. 특히, 90년대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손으로 감는 카세트 테이프, 연필, 필름 카메라, 헌책방, 손때 묻은 가구. 모든 요소는 느림과 정성의 상징이자, ‘느림의 미학’을 대변합니다. 히라야마의 루틴은 비효율적이지만 정직하고,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관객은 이 아날로그의 정취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됩니다.
반복 속 작은 변화, 그리고 감정의 흐름
히라야마의 하루는 늘 같습니다. 출근 전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먹고, 목욕 후 책을 읽고 잠들죠. 그런데 이 단조로움 속에도 작은 변화들이 들어오면서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흔듭니다. 가장 큰 변화는 조카 니코의 방문입니다. 예고 없이 등장한 니코는 그의 일상에 균열을 만들고, 평소 혼자 보내던 하루가 낯설고도 따뜻한 시간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히라야마는 처음엔 무덤덤했지만, 점차 감정을 내보이기 시작합니다. 니코와의 포옹,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낸 후 보이는 무언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깊은 인간적인 울림을 줍니다. 이 영화는 감정의 폭발보다는 그 흐름과 흔들림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라는 히라야마의 대사처럼, 영화는 관객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조용히 강조합니다. 나중을 위한 지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찰나적 아름다움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배우 야쿠쇼 코지와 감독의 미학적 연출
<퍼펙트 데이즈>는 마치 한 편의 수필 같고,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이는 야쿠쇼 코지의 절제된 연기 덕분입니다. 대사보다는 표정, 몸짓, 행동으로 삶의 무게와 여운을 표현하며, 실재하는 인물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실제로 그는 “하루하루 그 순간을 살아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이는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되, 외국 감독 특유의 거리감을 적절히 활용해 감정선을 과잉 없이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미니멀한 구도, 긴 호흡의 롱테이크, 풍경과 인물의 거리감을 절묘하게 활용한 연출은 시선을 잡아끌면서도 시선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음악과 음향 역시 과하지 않아 영상미와 조화를 이루며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일본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외국인 감독의 작품을 선정한 첫 사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녔다는 방증입니다.
나의 총평
<퍼펙트 데이즈>는 단조로운 일상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느리게 사는 삶이 결코 낭비가 아님을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반복되는 하루가 단지 루틴이 아닌, 자신만의 리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히라야마를 통해 보여줍니다. 바쁜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와 감정을 지키며 살고 싶은 분들께 이 작품은 꼭 한번 경험해보기를 권합니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충만하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제시합니다. 오늘 하루, 한 모금 커피의 온도나 가로수의 그늘, 누군가의 미소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